장작이 필요한 갠지스 강
장작이 필요한 갠지스 강
  • 오명하
  • 승인 2019.04.23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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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현 미래인재역량개발연구소 대표
▲ 최병현 미래인재역량개발연구소 대표

[호남안전신문] 칼럼=  도로 중앙선을 따라 소들이 유유히 걸어가고 있다. 중앙에는 매연과 차량들의 열기 때문에 모기나 파리가 살 수 없단다. 소들이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중앙선을 점거해 버린 것이다. 차들은 일상이 되어서인지 경적조차 울리지 않는다. 소의 배설물들을 지붕이나 자투리 공간에서 말리고 있다. 건조한 기후덕분이다. 거리 곳곳에는 어슬렁거리는 소들이 많다. 때로는 길옆에 네발을 하늘로 뻗고 죽어있는 소도 보인다.
 인도(India)는 결코 소들의 천국이 아니다. 암컷은 젖을 만들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사육되고 관리된다. 하지만 수컷소의 운명은 태어나는 순간 이미 홈리스(homeless)다. 우유도 만들지 못하고 수컷 소의 힘이 필요한 곳도 많지 않다. 잡아먹지도 못하고 양식만 축내는 꼴이 되니, 극소수의 씨받이에 필요한 수소 외에는 아무 쓸모없는 지경이 되어 거리로 쫓겨난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것이 사람의 행태를 생각하니 씁쓸하다. 현지 안내인의 설명에 따르면, 수컷소를 거리로 쫒아내는 대신 나그네에게 한 끼의 밥을 제공하는 것이 인도 사회의 불문율이라고 한다. 결국 수컷소는 나그네 한 끼 식사를 위한 대속물인 셈이다.
 도회 거리의 어린 가로수들은 철 구조물이나 벽돌에 둘러 쌓여있다. 소가 닿을 수 없을 정도의 크기로 자랄 때까지 소들로 부터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다.  소들에게 여린 가로수 잎들은 그림의 떡이다. 쓰레기더미를 뒤져서라도 먹을거리를 찾아야 한다. 죽기조차 쉽지 않다. 인도사회에서는 소를 도축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모진 목숨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어찌할 것인가! 이생의 숙업(카르마)때문에 수컷소로 태어난 것이라면, 참으로 잔인한 윤회(輪廻)의 겁(劫)이다. 
 
 갠지스의 얼굴
 갠지스 강을 찾아가는 길목에는 시장이 있다. 좌판, 때 묻은 옷, 검게 그을린 얼굴, 뭔가를 팔고 사는 절박한 모습, 자전거, 인력거, 리어카, 사이클-락샤(Cycle Ricsaw: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3륜 자전거)와 오토릭샤(Auto Ricsaw), 사람들로 인한 혼란의 정점이다. 쫓기듯 정신없이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키보다 더 큰 짐을 머리에 이고,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여인의 모습이 감탄스럽다. 저 자루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자신의 삶을 담아, 이고 가는 것은 아닐까?
행복에 대한 많은 정의가 있어도, 서민들의 행복론은 단순 명쾌하다. “등 따숩고, 배부르고, 마음 편하면 행복이다.” 먹는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가난은 죄악이다. 아무리 정치적, 경제적 자유가 허용되는 사회라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복지가 담보되지 않는 자유는 무의미한 자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생계가 보장되는 경제적 안정과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담보하는 것이 국가의 일차적인 책임일 것이다.  동행중 한분이 ‘우리도 옛날엔 저랬어!, 우리의 옛날 모습을 보는 듯하다. 부디 그들이 가난으로 고통 받지 않고, 비루해 지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유달리 눈에 많이 띄는 신발가게들,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하거나 샌들이나 운동화를 파는 곳이 곳곳에 늘어서 있다. 필자가 타고 가는 사이클릭샤의 한켠에도 짝잃은 낡은 샌들이 덜렁거린다. 하루 종일 몇 백보밖에 걷지 못하여, 수년을 신어도 뒤 굽이 멀쩡한 나의 구두가 생각난다. 정작 내 구두처럼 튼튼한 신발이 필요한 이는 이곳 사람들이다.
 미로처럼 얽혀 있는 시장을 간신히 빠져 나온다. 거리에 끝까지 늘어선 사람들이 동전을 구걸하고 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흰 가루를 뒤집어썼다. 덜렁거리는 남자의 그것이 민망하여 눈길조차 마주하기 어렵다. 그 와중에도  동전 한 닢에 거꾸로 물구나무를 선다. ‘요가’ 자세란다. 계단에는 뼈에 가죽만 입혀놓은듯한 수행자들조차 때 묻은 동전그릇을 앞에 둔 채 지나가는 행인에게 애닮은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생사번뇌를 초월한 수행자들조차 장작 값을 모으는 구걸을 한다. 죽음, 바로 직전까지도 삶은 이토록 치열하고 장렬하기까지 하다.
 갠지스 강은 히말라야의 빙하에서 발원하여 파키스탄을 거쳐 굽이굽이 흐른다. 인도인의 30%정도가 이용한다고 하니 이들에게는 생명의 강이고 은혜의 강이며 성스러운 강이다. 강변으로 이어지는 계단에는 강물 속에서 합장하며 기도하는 사람도 있고, 빨래를 하는 아낙도 있다. 강변에는 삶의 연명을 위한 구걸과 제 몸을 태우기 위한 장작을 구하기 위한 사람들로 넘쳐난다.
 해가진다. 어둠을 비집고 삶은 마친 시신은 성스러운 강물로 이생의 죄업을 씻는다. 그리고 장작더미 위에 얹혀진다. 떨림으로 시작 되었던 생명이 불꽃으로 타오른다. 마지막 이승의 치열한 삶까지 불꽃이 된다. 이내 한줌의 재가 되고 갠지스의 물이 된다.
 삶과 죽음은 공존하는 것일까? 강변에는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장작더미위에 연기로 사라지는 사람도 있다. 아마도 삶과 죽음의 모습이 이처럼 같은 공간에서 극명하게 연출되는 곳은 이 지구상에는 없으리라.  많은 사람들은 노랑 금잔화 꽃으로 치장된 접시 배에 촛불을 켜서 갠지스 강물에 띄운다. 이들의 마음은 촛불이 강바람에 일렁이고, 강물이 넘칠지라도,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명’의 외경(畏敬)에 대한 떨리는 기도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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